다른 이야기 2012. 2. 6. 16:54

이 포스트는 2010/05/01 작성한 것을 재탕(…)한 내용입니다.

  난 때때로 모든 걸 처음으로 되돌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침대나 가구 위치부터 책장에 꽂힌 서적의 순서, 노트 필기, 싸이와 블로그, MP3 태그, 게임 계정, 그리고 심지어 휴대폰 연락처까지. 그러다 보니 조금만 익숙해지면 다시 원점이다. 이는 어쩌면 내가 쌓아온 결과물들에 대한 무기력과 의기소침함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 탈 없이 지내다 '호손(Hawthorne)'의 『웨이크필드(Wakefield)』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돌연 어디론가 훅 떠나버리거나 연락을 끊어 스스로 세상과 단절한다. 그러나 단순히 소설의 경우처럼 자신의 공백이 가져오는 결과와 영향에 대한 호기심이라 기보다 뭔가 내면 깊숙한 곳에서 두근거리며 충동질하는 알 수 없는 힘의 작용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 느낌이다. 이는 언뜻 '역마살'과 비슷해 보이지만, 일정한 기간을 두고 나타나는 그것과 달리 그 힘은 매 순간 예고 없이 수면으로 떠올라 내 행동을 제어한다. 그에 따른 결과는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좋은 점은 다시 새로운 환경이 나에게 의욕과 생기, 일에 대한 추진력을 제공한다는 것이고, 반대로 나쁜 점은 이제까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나름대로 축적한 경험의 산물, 수집품, 인맥, 그리고 나에 대한 평판 등이 말 그대로 모조리 '초기화'된다는 것이다.

  일단 초기화하고 나면 난 다시 원기를 회복하지만, 또 금방 후회하곤 한다. 단순한 습관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일종의 편집증처럼 보이는 이 괴상한 취미는 한 번쯤 크게 고민해봐야 할 정도로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런 일이 발생하면 언제나 그렇듯이 거의 인식 못 할 정도로 이미 내 삶 깊숙이에 침투해 있어서 이제는 이것 없이 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물론 자제해야 할 필요도 있겠지만) 결국 난 이런 인간이다.


Posted by 비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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