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야기 2012. 2. 7. 22:53
이 포스트는 2011/09/25 작성한 것을 재탕(…)한 내용입니다.


  130일 동안 신문을 돌렸다. 이유야 돈을 벌기 위함이었고 남들보다 먼저 아침을 연다는 점도 메리트라 여겨 배달일을 택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이 뚝딱 생기는 건 아니더라, 경력도 없고 무엇보다 이동수단이 도보─처음엔 자전거를 타려고 했으나 아파트 내 배달에는 자전거가 되려 불편하다, 결국 손수레를 구매했다─였기 때문에 보급소에서 선뜻 일을 허락지 않았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연락한 '경향 신문'에서 일을 구해 다음 날부터 바로 배달에 들어갔다─경향 부장님은 참 잘해주셨다, 배달하다 낸 실수도 화난 기색 없이 직접 메우시고 사정상 이것저것 요구해도 다 이해해주셨다. 그만둔다는 마지막 전화에 「밥이라도 한 끼 사줘야 하는데…」라는 말이 그저 감사했다는.

  신문은 한 부를 한 달 동안 돌리면 2,500원에서 3,000원 정도의 급여가 주어지고 일요일에는 쉰다─일요일을 제외한 공휴일은 배달한다. 난 3개의 보급소에서 신문을 받았고 12부로 시작, 최대 92부까지 신문을 돌렸다─다른 이들은 300부까지 돌리던데 난 수레가 휘청거려서 포기함. ㅜㅜ 새벽 3시에 아파트로 신문이 배달되기 때문에 최소 3시 반에는 침대에서 일어나야 한다. 땀날 정도로 뛰어서 배달하면 2시간, 음악도 듣고 천천히 걸으면서 하면 2시간 반이면 끝났다. 그러면 대개 오전 5시나 반 정도였다.

  배달은 결코 만만치 않다. 일단 매일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이 가장 크다. 일하면서 수면 시간이 평균 4시간 30분이었는데 여파때문에 낮에 병든 닭마냥 졸곤 했다는. 딱 한번 늦잠을 잔 적이 있는데 끝까지 쉬지 못하고 달렸다, 그래도 항의 전화가 좀 있었다고. ;; 최소 6시까진 가정에 배달이 되야 한다. 가장 신경썼던건 바로 날씨였다. 비가 와서 신문이 젖으면 절대로 안되기 때문. 신문도 상품이라고 생각하니 구독자에게 최대한 정상품을 배달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비 한 방울도 조심하게 되더라. 덕분에 비오는 날은 평소보다 배달이 힘겨울 수밖에 없다. 우산이나 우의─여름에 입고 있으면 찜질방이 따로 없다─가 상당히 걸리적거리고 비때문에 신문에 계속해서 신경을 써야 한다, 덕분에 배달 시간도 0.5배 정도 늘어남. 우리 보급소에선 신문을 개별 포장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따로 큰 김장 비닐 안에 신문을 적재해 싣고 다녔는데 나름 쓸만했다. 이번 여름엔 유난히 비가 많이 왔다. 아직도 비가 오는 밤이면 새벽 일하시는 분들 생각에 괜시리 마음이 무겁다.

  배달하면서도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술에 취해 아파트 앞 잔디에 대자로 뻗은 아주머니에 깜놀하기도 하고, 후진하던 트럭에 치여 고장 난 수레를 끌고 일을 마치기도 하고, 안 자고 기다렸다 다짜고짜 신문 안 본다며 배달 말라고 따지는 주인도 만나고, 라인 현관부터 내가 배달하는 곳까지 엄청난 양의 핏자국이 이어진 걸 보고 소름 돋기도 하고, 배달하면서 잠시 두고 간 우산을 눈앞에서 도둑맞고 또 그 범인의 꼼수─엘리베이터에 자기만 탔으면서 이층저층을 누르고 내리는 연막작전?─에 어이가 없던 적도 있고, 비오는 날, 갑자기 빠진 수레바퀴 때문에 죄다 쏟아져 젖은 신문을 보며 「이 고생을 하며 돈을 벌어야 하나」하는 망연자실에 눈물이 난 기억도 있다.

  물론 부정적인 사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새벽이라는 동 시간대에 일하는 분들과 나누던 그 날의 첫 인사, 남는 신문인데 보시라고 건네면 들려오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자신도 바쁘면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대신 놔주겠다며 호수를 묻던 동아일보 아주머니, 그리고 나도 그분을 따라 다른 분께 호의를 베푼 일, 지나가는 음식물 쓰레기차 냄새에 구역질을 내다가 문득 차 뒤에 매달린 아저씨가 쓰레기를 나르려고 차보다 먼저 내리는 순간 그분 두 다리가 성하지 못하다는 걸 발견하고 되려 내 치졸한 행동에 더 구역질이 났던 일 등.

  비록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이 일은 내게 평생 소중한 경험으로 남을 듯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만 믿고 무작정 시작했으나, 신문 배달은 군대에서 꾸준히 노력한 '아침형 인간'의 연장이었고 후에 다른 일을 하는 데 있어 스스로에게 큰 자신감을 부여하는 계기와 그 외 여러 가지 가르침으로 돌아오리라 생각한다─얼마 전 카페에 갔다 평소 무심코 냈던 4000원이라는 커피 값을 위해 신문을 얼마나 돌려야 하는 생각에 그냥 나온 일이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돈을 쓰는 법까지 배운 셈이다. 마지막으로 오늘도 묵묵히 배달일로 하루를 여는 모든 분들의 미래를 응원하며 글을 마치고 싶다.


Posted by 비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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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년의습작 2012.02.08 22: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로만 읽었는데도 수 많은 새벽의 온기들이 전해져오는 느낌입니다. 목마른 사람이 반만남은 물컵을 보며 반이나 남았다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은데 말이죠... 다양한 경험이 풍부한 인생의 밑거름으로 자라나길 바랍니다^^

  2.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02.09 11: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아요. 최저시급에 가까운 알바를 몇번 하고나면 천원자리 몇장이 절대 가벼워 보이지 않죠. 그런의미에서 알바를 몇번 해보는건 좋은경험 인거 같아요. 신문을 돌리는 알바를 하실 생각을 하시다니 뭘해도 되실분 같습니다 ^^

  3. 동네에서 두 번째로 잘 나가는 아저씨 2012.02.16 04: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학교 다닐때~ 친구들이 신문배달 많이 했는데~ 그 때는 150부 돌리면 겨우 10만원 남짓 받았었는데~ 그때보다 시급이 조금 올랐군요~^^

  4. land 2012.02.16 15: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남겨주신 댓글따라 와 봤는데, 많은 것을 느끼고 갑니다.
    글에서 따뜻한 감수성이 느껴져서 참 좋네요 ^__^ 종종 글 남겨주시면 종종 방문하겠습니다 ^^

  5. 교과서 2012.10.04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업시간에 신문배달과 관련한 글이 나와서 신문배달급여에 관해 찾다가 님의 글을 읽에 되었습니다. 참 훌륭하시네요. 다른 친구들과 님의 글을 함께 읽어보고 싶습니다.

  6. mar 2013.12.10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좋은글 기분 좋게 읽었습니다. 많은 도움도 되었구요.
    저도 고등학교 시절 배달을 했었는데 그때 기억도 나네요.
    신문배달 특히 날씨 안좋을때 힘들죠.
    힘들때 지나가며 해주시는 따뜻한 한마디가 그리 힘이 되었었죠.
    좋은글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