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야기 2012. 2. 14. 16:06

이 포스트는 2011/10/03 작성한 것을 재탕(…)한 내용입니다.


  요즘 우리 동네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없다. 아니 어딜 가도 어린 시절만큼 애들이 바글거리는 놀이터를 본 적이 없다. 전국의 놀이터 업체가 하나밖에 없는 건지 모양도 전부 동일하다.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기구들은 전부 규모가 작거나 단순한 것들뿐이고 땅은 우레탄으로 덮여 버렸다. 아이들은 어느 동네를 가도 규격화된 기구에서 규격화된 놀이만 하고 있다.

  어린 시절, 놀이터는 우리만의 공간이었다. 놀이터에 가면 언제나 친구가 있었고 질릴 걱정 없는 놀잇거리가 무궁무진했다. 공이 없어도 바닥에 줄을 그으면 내 땅이 되었고 또 건드리면 죽을 수도 있는 '오징어와 도시락 놀이'의 경계가 되기도 했다. 술래를 정하는 가위바위보에선 언제나 운이 없었으나 맨 마지막 술래만 아니면 되었다. 비가 오는 날은 두꺼비를 연신 부르면서 터널을 만들고 수로를 내었으며 아니면 그저 땅을 파는 것만으로 재미가 났다. 그러다 구름다리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지거나, 그네의 사슬에 머리칼이 끼거나, 시소에 다릴 쓸리는 일도 있었지만, 다음 날이면 다시 놀이터로 향했다.

  그 시절의 놀이터는 동네마다, 시소 하나 그네 하나도 동일한 곳 없이 특징이 있었다. 이 동네에는 정글짐이 있었고 저 동네에는 미끄럼이 특이했다. 그래서 재밌다고 소문이 난 놀이터가 있으면 친구들과 원정을 가기도 했다. 우리 동네보다 굵은 사슬을 가진 그네와 도색만 다른 미끄럼일 뿐인데도 그저 신기하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가끔 회전 기구나 줄타기 그물처럼 레어템을 발견하는 날은 대단한 보물을 찾은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여러 놀이터를 비교하며 마치 우리 동네의 놀이터가 내 것인 양 자랑스러워진 적도 있었다.

  20년 만에 다시 찾은 놀이터는 예상대로 많이 변해 있었다. 익숙했던 모습은 다 사라지고 새 놀이터로 변하거나 아예 주차장과 텃밭으로 전락한 곳도 있다. 텅 빈 공간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내 주변으로 까르르 대며 뛰어다니던 친구들 모습이 아른거린다. 「여기 다리로 굴리는 나무통이 있었어. 그래, 저긴 앞뒤로 움직이는 기차놀이 기구도 있었지. 참 재미있었는데…」

  난 가끔 놀이터로 가는 꿈을 꾼다. 눈이 부시게 맑은 날, 숨 가쁘게 달려간 놀이터에는 이미 아이들이 바글바글하다. 눈치를 보다가 가장 친한 아이들이 섞인 무리로 끼어든다. 「뭐 하고 놀래?」 「어제 하던 거 이어서 하자, '사거리'」 「아냐, 오늘은 '경찰과 도둑' 해」 놀이가 시작되고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놀이가 시작된다. 날이 저물고 처음 10명이 넘던 친구들은 어느새 한두 명만 남았다. 아파트 창문에서 들어오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 이제 가야 해」 「나도 갈래」 「내일도 올 거지?」 「응, 내일 여기서 보자」 그래, 내일 또 여기서 놀자….


Posted by 비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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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네에서 두 번째로 잘 나가는 아저씨 2012.02.16 04: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좋은 글솜씨를 가지고 계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