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이야기 2012. 2. 18. 18:32
이 포스트는 2010/06/06 작성한 것을 재탕(…)한 내용입니다.

  책에서 낭만파 게이인 '몰리나(Molina)'는 함께 수감 중인 '발렌틴(Valentine)'에게 두 번째 영화 이야기를 해준다. 그러나 반동분자인 벌렌틴은 그녀의 미화된 나치 선전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몰리나 「나보고 다시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하라면, 아마 이 영화를 고를거야」
발렌틴 「왜 그렇지? 이건 더럽고 추잡한 나치 영화란 말이야! (중략)」
(중략)
몰리나 「아니야. 더럽고 추잡한 것은 바로 너지, 영화가 그런 것이 아니야」
(중략)
몰리나 「넌 믿지 않겠지만…… 내가 이렇게 화낸 것은 나치 선전물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하지만 난 이 영화가 잘 만들어졌기에 좋아하는 거야. 그런 것과는 별개로 이건 하나의 예술 작품이야. 넌 잘 모르겠지만…… 네가 직접 보지 않았으니까」

'마누엘 푸익(Manuel Puig)', 『거미여인의 키스(El Beso de la Mujer Araña)』, 송병선 역, 민음사, 2000.

  저 저번 휴가 땐가 ○○네 원룸에서 묵은 적이 있다. 간만에 만난 우린 이런저런 얘길 하며 밤을 지새웠는데, 어쩌다 보니 영화 이야길 하게 됐다. 그리고 『아포칼립토(Apocalypto)』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은 자신이 수강 중인 수업에서 이 영화를 보았으며 완전히 백인 우월주의를 대놓고 광고하는 쓰레기 영화라고 소개했다. 사실 난 그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멜 깁슨(Mel Gibson)'의 전작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를 높이 평가해 영화가 그럴 수도 있지만, 할리우드에서 그 영향력만큼은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웬걸 이 화제 하나 때문에 우린 1시간 동안이나 씩씩대며 자기주장을 서로에게 피력해야 했다. 그런데 웃긴 점은 우리가 서로 다른 관점에서 호불호를 논했다는 것이다. 바로 위에 소설에서처럼 말이다. ○○는 그 작품이 내포한 사상이나 의도를 두고 영화를 '비난'한 것이고, 난 영화와 감독 자체가 가진 입지를 두고 영화를 '옹호'한 셈이다. 알고 보면 아무렇지 않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발생하는 오류다. 상대의 관점에서 보기 전에 관점이 뭔지부터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말이다. 책을 보다 푸익이 마치 우리 얘길 듣고 쓴 듯해 살짝 놀랐다. ;;


Posted by 비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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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철한자구/서해대교 2012.02.19 13: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같은 전제조건에서 논했어야 하는데, 저도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다른 조건속에서의 주장을 피력하고 있다죠.ㅎㅎ

  2. 이야기캐는광부 2012.02.20 00: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자와 여자사이의 대화에서도 이런 관점의 차이가 있고,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에서도 관점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3. 강건 2012.02.20 01: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이면이 존재하기 마련이기에 그런 논쟁이 발생하는거 같아요. ^^

  4. land 2012.02.24 02: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 그 관점이 상대에게 타협할 수 없는 '가치관'이 되어있을 때가 종종 있어, 대화가 힘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