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V 2012. 2. 2. 17:41
이 포스트는 2010/10/26 작성한 것을 재탕(…)한 내용입니다.




(1) 감독

'분리된 이미지들의 파편,' '박명천' 감독의 작품에 대한 감상이다. 특별한 의미 없이 화면에 흐르는 영상들은 무미건조하며 불친절하고 다소 충격적인 장면도 포함하지만, 감독의 말처럼 「그 이미지들은 그로테스크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새로운 시도」라는데 동의하고 싶다. 그가 만들어 낸 이미지들은 어느 하나 쉽게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고 감상 후에도 뇌리에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매력이 있다. 이런 특징들은 『성인식』의 뮤직 비디오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나 대중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박지윤'의 '청순가련'한 이미지를 완벽히 지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사실 박명천 감독이 아니어도 『성인식』이라는 곡의 뮤비는 '야하게' 만들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였기 때문에 뮤비는 단순히 선정성만 자극하는 영상을 넘어 독특한 매력을 지닌 작품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성인식』은 여전히 그의 필모그래피의 한 자리를 자랑스럽게 차지하고 있다.

(2) 노래와의 연관성

『성인식』에서 말하는 '성인식'이 정말 성인이 되었다는 경건한 의미가 아니라, 성관계가 허락되는 나이─아직도 이런 걸 지키는 사람이 존재할까 싶긴 하지만─가 되었다는 의미라는 건 가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애초에 '박진영'이 이런 점을 강조해 만든 곡이기에 뮤비 역시 성관계에 초점을 둔 파격적인 연출이 두드러진다. 박지윤의 손가락이 미싱에 찔려 붉은 피가 흐르고 그 피가 새하얀 천에 번지는 모습은 다분히 여성들이 첫 경험에서 겪는 출혈을 의도한 장면이고, 그녀가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은 성관계를 갖기 전 상대를 기다리는─째깍거리는 시계가 그 초조함과 두려움의 심정을 대변한다─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지금이야 이게 무슨 파격적이냐 싶을 정도로 심의가 관대해졌지만 당시엔 이 정도의 수위만으로도 큰 논란거리가 됐다.

박지윤의 검은 치파오풍 의상을 보면 생각나는 노래가 하나 있다, 바로 '엄정화'의 『초대』다. 『성인식』과 『초대』는 박진영이 프로듀싱했다는 공통점 외에도 많은 부분에서 닮아 있다. 도발적이고 아찔한 여성의 호소를 담은 가사부터 동양풍의 신비로운 이미지를 베이스로 하고 있는 수위 높은 섹시 컨셉까지. 하지만 그 느낌은 살짝 다른데, 엄정화의 『초대』가 원숙함이 느껴지는 농염하고 도도한 섹시미를 발산한 것이었다면 박지윤의 『성인식』에는 대담하면서도 반항적인, 그러면서도 약간 서툰 듯한 느낌의 섹시미가 베어 있다.

『성인식』에는 「난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에요」와 같이 소녀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가사가 많은데 이는 뮤직 비디오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바로 박지윤이 직접 소녀와 여성의 상반된 모습을 연기한 것인데, 새하얀 잠옷에 머리를 올려 묶은 청순하고 귀여운 소녀의 이미지와 허벅지까지 아찔하게 찢어진 검은 치마에 촉촉하게 젖은 단발 머리의 섹시하고 도발적인 여성의 이미지는 색채만으로도 분명한 대비를 보인다. 그 중 단편적인 이미지들과 다양한 소품들로 이루어져 1분 50초에 달하는 인트로는 박명천 감독의 연출이 단연 돋보이는 부분이다. 천진난만한 박지윤의 얼굴표정, 테디 베어 인형, 그리고 무시무시하게 돌아가는 미싱과 다소 괴기스런 분위기를 연출하는 오르골 소리까지 어느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요소가 없다. 동화,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떠올리게 하는 플롯이나 인형이 움직이는 공상적인 설정은 퇴폐적이고 공포스런 뮤비의 이미지들과 어우러져 마치 뒤틀린 동화 속 세계처럼 몽환적이고 섬뜩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또한 소녀가 여성이 되는 과정을 일축해 보여줌으로써 서사적 설명과 더불어 박지윤이라는 가수의 파격변신을 대중이 자연스레 컨셉으로 받아들어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3) 특징

뮤직 비디오의 소스는 크게 인트로와 아웃트로, 중간 삽입 씬, 그리고 단독 씬과 3개의 안무 씬으로 구성돼 있다. 안무 씬의 비중이 많은 만큼 안무가 돋보일 수 밖에 없는데, 다리를 쩍쩍 벌리는 민망한 안무만 제외하면 박진영식의 과격하면서도 절도있는 댄스가 노래의 퉁퉁거리는 스트링 사운드─이는 또한 뮤비의 퇴폐적이고 날카로운 이미지들과 만나 묘한 긴장감을 조성한다─와 썩 어울리는 편이다.

언급했지만 뮤비에는 각종 비유나 소품을 사용한 연출이 두드러진다. 감독은 단지 뮤비에 힌트가 되는 '맥거핀'만 중간중간에 설치해놨을 뿐 어떤 설명도 하지 않는다. 영상은 실체가 아닌 그림자만을 끊임 없이 출력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뮤비가 무겁고 심오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이는 다소 불친절한 설정이지만 반대로 시청자들에게 무한한 상상을 허락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만약 『성인식』의 뮤비가 살색으로 도배된 그저 그런 영상이었다면 얼마나 재미없었겠는가. 또 우리는 진짜 그런 뮤비─'다비치'의 『My Man』이나 'T-ara'의 『Bo Peep Bo Peep』 등─의 결과가 얼마나 실망스러웠는지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적절히 숨기고 가릴 때 그 효과는 극대화되는 것이다. 제작된 지 거의 10년이 다 됐지만 『성인식』의 뮤비는 지금도 여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4) 베스트 컷

① 「소녀는 바늘에 손가락을 찔려 여자가 된다」, 허무맹랑해 보이는 이 설정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의 원전이 된 유럽 설화에 따르면 물레에 찔려 잠에 든 공주를 기사가 발견하게 되고 둘은 키스뿐만 아니라 '관계를 맺는' 것─말이 관계지 사실상 '강간'─으로 전해 진다. 실제로 당시 유럽의 여성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물레방에서 실뽑는 노동을 하며 보냈는데 이 과정에서 은밀한 교제가 많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굳이 이런 배경지식 없이도 새하얀 천에 피를 짜는 듯 기괴하게 돌아가는 미싱의 모습은 단연 인상적인 장면이다.





② 초조한 모습으로 거울을 바라는 보는 박지윤의 표정에서 성인이 된 자신의 모습에 대한 낯설음과 첫 경험에 대한 두려움이 드러난다. 어두운 조명과 호텔 룸을 연상시키는 배경도 적절했고 개인적으로 뒤를 돌아보며 마무리 짓는 구성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③ 뮤비의 안무 씬은 로우 앵글을 사용하여 실제보다 인물을 길게 늘이는 효과를 주었다. 그래서일까 『성인식』의 안무는 라이브 무대보다 뮤비에서 더 빛을 발한다. 배경에 고딕적인 느낌을 더하는 스테그헤드가 화면 앞 쪽에 위치해 독특한 느낌을 주는 소품 사용도 눈여겨볼만 하다.





④ 박명천 감독의 작품에는 '테디 베어'가 자주 등장한다. 친근한 물건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등장했을 때 느껴지는 이질감을 그는 테디 베어를 이용해 적절히 연출한다. 하지만 이번 뮤비에서 테디 베어는 좀 더 비중있는 '캐릭터'로 나온다. 바로 박지윤의 상대역인, 남성을 대변하는 것인데 순진한 얼굴로 그녀를 유혹한다. 그러나 아웃트로에서 테디 베어는 그녀에 의해 처참하게 찢겨 지는데 마치 사랑에 상처 받은 팜므파탈의 복수처럼 처절한 느낌이다. 이는 어쩌면 성적 타락으로 인한 죄의식의 도발일 수도 권능적인 남성상에 대한 저항일 수도 있지만 그 끝은 무심하게 쓰러진 테디 베어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처럼 허무한 것일 것이다.


Posted by 비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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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핑구야 날자 2012.02.03 06: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은 잘 안보이더라구요